목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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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최성은 목사(타코마제일침례교회 담임)가 4년 전에 쓴 칼럼이다. 본지는 한인이민교회에 필요한 내용이라 판단, 저자의 동의를 얻어 이번에 칼럼을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요즘 복음주의의 본질을 퇴색시키는 슬픈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우리는 목회자로서 또 주님의 제자로서 정말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늘 심각하게 고민하며 자신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은 제외하고서라도 일부 한국 복음주의자들의 최근의 실수들을 두 가지 이야기로 예를 들어본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교회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크리스천 신문의 한 칼럼난에 오프라 윈프리(Oprah Winprey)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녀가 어떻게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하였는가를 감동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오프라를 복음주의 크리스천으로 소개하며 그녀의 힘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오프라는 미국에서 시행되는 갤럽조사마다 미국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선정되는 단골손님이다. 한 예로 마이클 잭슨이 오프라의 쇼에 출연했을 때 시청률이 9천만 명에 육박했다. 그녀의 영향력과 리더십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다.

그러나 오프라가 어린 시절 침례교에 다니긴 했지만 그녀는 복음주의 크리스천도 아니고 회심한 크리스천도 아닐뿐더러, 요즘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러듯이, 오히려 하나님과 예수님을 빙자한 새로운 뉴에이지 운동의 한 사람의 기수이다. 그녀는 성경과 전혀 상관이 없는 New Spiritualism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최근에는 자신이 삼위일체의 네 번째 “fourth person”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에도 불구하고 오프라는 한국의 일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성공적인 크리스천으로 소개되며 미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크리스천들의 입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인물로 부각되어 진다.

Houston, Texas에서 아버지 John Osteen(1929-1999)의 교회를 물려받아 목회하는 Joel Osteen은 Lakewood Church를 몇 년 안에 30,000명이 넘는 대교회로 성장시켰다. 필자는 4년 전부터 그의 설교를 자주 들어왔고 처음부터 그의 화술과 설교에 매료되었다. 그는 화술에 있어서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고 부담을 주기보다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동감하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이 점은 모든 설교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데는 동감한다).

그런데, 그의 설교를 1년쯤 듣다보니 고민이 생겼다. 너무 듣기 좋고 신기할 정도로 말을 잘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그에게서 십자가나 심판에 대한 설교를 들어 보지 못했다. 부임 후 처음 일 년간은 많은 성경구절을 다 외워서 적시 적소에 잘 사용하는가 했는데 요즘은 그의 설교에서 성경구절을 찾아보기 힘들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의 주제를 뒷받침하는 인용구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CNN의 Larry King Live에 단독 출연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교회 안에서 “sinner”(죄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I don’t use it. I never thought about it.” 그는 죄와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매 주일 “positive stuff”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성경(the King James Bible)은 죄라는 단어를 무려 830번 이상 언급 하고 있다. 오스틴의 CNN 인터뷰는 많은 파장과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인가?”라는 질문에 Yes나 No의 답변을 피하며 너무나 성의 없는 대답으로 복음주의 크리스천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고 결국 자신의 웹사이트에 공개 사과를 하며 예수는 당연히 그리스도라며 그 답변을 수정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모든 크리스천들의 기본적인 전제이다. 놀랍게도 오스틴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공개적인 TV쇼에서 그 기본적인 답을 확신 있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슬프게도 오스틴은, 좀 과장이겠지만, 한국에서 이미 시대가 낳은 복음전도자 빌리그래함 목사님만큼 유명해졌다. 한국에서 번역된 오스틴의 베스트셀러 Your Best Life Now (긍정의 힘)는 한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들의 추천서를 개재하며 마치 죠엘 오스틴이 미국을 이끌어 가는 떠오르는 복음주의자인양 소개하고 있다. 목회자를 위한 한국의 유명한 전문 웹에서도 아예 그의 영문 설교를 매주 볼 수 있도록 링크를 올려놓고 있다. 그 실용주의에만 바탕을 둔 오스틴의 강의와 철학을 배우며 영향력을 받는 신학생들과 교인들의 신앙을 누가 책임질지 걱정이다.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이겠지만 이민목회 속에서의 목회자의 가장 큰 고민 가운데 하나는(제대로 된 목회자라면) “매 주일 무엇을 설교 할 것인가?”일 것이다. 4,000여 개의 이민교회가 있다고 하지만 그 가운데 상당수는 성도수가 100명을 넘지 않는 아담한 교회이다.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아는 분위기 속에서 목회자로서 매 주일 십자가와 회개에 대한 가볍지 않은 내용을 설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성도들 역시 부담 주는 설교자를 본능적으로 피한다. 현재 젊은 미국 교회 목회자들의 특징은 Didache(도덕적, 교훈적)적인 설교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10년 넘게 미국 목회자들의 설교를 조명한 바로는 설교의 적용부분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미국설교의 장점이기도하다. 수천 년 전 성경 본문의 내용을 현실세계의 나의 삶의 자리까지 끌어오는 해석학과 본문 적용은 설교자의 기본 과제이며 당연한 의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도덕적이고 교훈적이고 적용적인 설교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 Kerygma(신약 성경 복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적인 설교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상당수 중소형 교회에 다니는 오래된 교인들도 Didache적인 설교에만 귀가 훈련되어 있는 듯하다. 사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상 휠씬 듣기 편하다.

필자의 조심스런 소견으로는 한국의 복음주의 설교는 대체로 미국의 형편과 반대로 Didache적인 설교보다는 Kerygma적인 설교가 더 많지 않나 생각한다. Kerygma적인 설교를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복음을 전하는데 그 방법이 너무 지루하거나 교리적이고 않아야 하고, 오히려 우리의 실제적인 삶의 고민과 만나는 철저한 몸부림의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케리그마적인 설교도 당연히 교훈적이고 삶과 밀접한 적용이 필요하다.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John Stott, Michael Green, Robert Mounce, Craig Loscalzo, Lewis Drummond 등이 지적한 대로 C. H. Dodd가 주장한 Kerygma와 Didache에 대한 너무 분명한 구분(too sharp distinction)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예수님은 케리그마와 디다케 두 가지를 다 중요하게 여기셨고 균형 있게 사용하셨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는 복음적인 설교와 도덕적인 설교의 비중의 균형이 깨어지고 있는 것을 넘어서 오스틴의 예처럼 일부 복음주의의 경향이 복음의 본질의 내용까지 흐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의 쇼가 마치 하나의 종교인 양 추앙 받는 것이나, 그 성공담을 여과 없이 설교의 예화로 삼고, 악덕 기업인이었던 록펠러가 아직도 한국인의 십일조 설교에서 영웅으로 등장하고, 죠엘 오스틴의 설교가 하늘을 찌르듯 인기가 있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복음과 십자가에 대한 본질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해도 성도가 불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복음주의 설교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설교의 위기는 곧 신학의 위기이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전 2:2, 참조-갈 6:14)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 신학의 정수이고 설교의 핵심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성도들의 가려운 데만 긁어주고 놀라운 화술과 웅변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다 해도 십자가를 통해 성도들이 숨기고 있는 썩어져 가는 암 덩어리를 도려내는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주인인 예수님 앞에 교회성장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며 사람들 가운데 목회를 하더라도, 언어의 둔함과 지역의 한계 때문에 교회 성장이 더디더라도 예수님과 십자가에 대한 놀라운 사랑의 메시지로 성도들을 치료하고 사랑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교회 성장이 어디 있겠는가? 오프라의 카리스마와 죠엘 오스틴의 화술이 없더라도 어둔한 언어지만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민 성도들의 아픔을 포용할 수 있는 설교자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위로하시지 않겠는가?

아담한 교회이지만 부족한 설교이지만(설교 준비와 기도가 부족한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 부족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심장 깊숙한 곳에서 불을 뿜듯 토해낼 수 있는 설교자라면 무엇이 부러울 것인가?

오프라를 거듭난 교인으로 생각하며 설교의 예화로 사용하는 오류나, 죠엘 오스틴을 복음주의의 기수로 평가하는 실수는 복음주의 설교자들의 하나의 단편적인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 시대는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설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의 포스트모던의 파도에 휩쓸려 성도들의 필요한 부분만을 긁어주며 잘못된 희망(fake hope)으로 일관하는 교양강좌로 흘러간다면,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케리그마(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선행적으로 선포하는 인기 없는 선지자들을 찾으실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무엇인가 적용할 것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필요(felt need)를 충족시켜주는 Didake적인 설교도 의심의 여지없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영혼의 목마름(real need)을 만져 줄 수 있는 복음적인 설교의 우선순위는 결코 타협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시대는 케리그마와 디다케적인 설교의 균형은 두 번째 이야기이고, 오스틴의 예처럼 심리학을 곁들인 화려한 교양강좌가 복음의 본질을 위협한다는 것이 더 화두일 것이다. 그리고 무분별하게 그 성공담을 퍼뜨리는 설교는 오늘도 교인 수에 집착하지 않고 온전히 십자가의 복음 설교를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키워내고자 고전 분투하는 주의 종들을 낙심케 만드는 위험한 일이다. 복음의 본질에 관한 설교는 뒷전이고, 일 년 내내 십자가 고난을 통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 하나 없이, 사랑과 은혜의 교양강좌를 통한 교회 성장을 이뤄내는 것을 보면 참 말세긴 말세인가 보다. 그런 면에서 적용이 훌륭한 미국 설교의 장점은 수용하면서도 실용주의에 빠져있는 미국 설교자들을 지나치게 우상시하는 실수는 철저히 배격해야 할 것이다. 사실 어느 영국 청교도의 전통을 이어 받은 설교보다 더 훌륭한 설교는 고난과 핍박 위에 세워진 한국 초대교회의 순교자적인 복음 설교, 십자가 설교라 생각한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바라보며 그러한 순수한 복음 설교가 그 부흥의 중요한 원동력이었음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하겠다.

복음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당연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다. 복음에 대한 설교를 하다 보면 당연히 부딪힐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고 사도들의 사명이었다. 우리가 누구의 제자인가?

짧은 글이지만 이 글을 통해 어려운 교회, 힘든 상황이지만 성실하게, 쉬워 보이는 길과 타협하지 않으며 뜨거운 열정으로 주님의 교회들을 돌보며 십자가를 설교하고, 한편으론 진심으로 성도들의 삶을 어루 만져내는 이 시대의 이민 목회자들을 격려하며 생각해 본다. 사도행전 첫 베드로의 긴 설교의 핵심은 다름 아닌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라는 은혜와 회개의 선포였다. 아무런 교양강좌와 웅변 없이도(물론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달라진 베드로의 모습과 학식에 사람들이 놀라긴 했지만) 그날 회개하며 삼천 명이 주님 앞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복음주의 설교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초대교회의 설교로 돌아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십자가에 묻어난 피의 복음을 설교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거기에 왜 능력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신문 기사 인터뷰] 이민 목회 철학과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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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미주 크리스챤 신문인 크리스챤 헤롤드 30주년 기념으로 미주에서 젊은 목회자 3인을 뽑아 인터뷰를 했다. 3인중에 한분인 담임 목사님이 한 인터뷰에 목회 철학 특히 이민 교회와 문화, 2세교육, 다민족 사역의 방향이 잘 담겨져 있다. (인터넷 주소: http://christianherald.tv/html/company/search.asp)

1. 개인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성함, 생년, 사역지역, 담당사역)

최성은 목사는 한국 침례교신학대학(B.A)과 루이빌 켄터키에 소재한 남침례 신학대학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Master of Divinity를 졸업했다. 2004년 James I. Packer, John Stott, David Johns등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An Analysis of John R.W. Stott’s Theology and Practice of Evangelism”란 논문으로 Ph. D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학생부와 대학부를 담당하다가 95년 도미해 루이빌을 중심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며 8년간 동서남북 네 곳의 다른 교회에서 영어권 그룹들과 이민 교회를 섬겼다. 그는 복음주의와 전도신학, 강해 설교, 삶을 나누는 성경공부와 예배의 개혁, 셀 그룹에 관심이 많다. 미주 한인 사역자들의 네트워킹인 Korean Diaspora Ministry 의 선교 분과장으로서 이민교회의 사역과 신학에 대하여도 관심이 많다.

2. 30대 목회자의 눈으로 미주 한인교계의 현 모습을 진단해 주십시오.

오늘 질문에 개인적 평가 보다는 최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려고 합니다. 현재 3,500여개의 이민 교회들이 있고 그 중에 90% 이상은 100명 미만의 가족 중심의 소형 교회들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종교심이 강해서 자연스럽게 교회 중심으로 한인 커뮤니티를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민 사회에서의 많은 문제들도 이민 교회에서 터져 나오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현재 미주 한인 교회는 이러한 아픔을 지닌 상처의 공동체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 전도하기가 전보다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이민 생활의 아픔을 딛고, 예수님을 만나고, 가정과 개인의 치유와,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잘못된 리더십으로 말미암아 더 없는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제없는 교회없고, 문제없는 사람 없지만, 특히 이민 교회는 이 개인과 공동체의 상처의 문제들을 어떻게 치유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내적 치유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제대로 전하기만 한다면 그 안에 모든 내적 치유와 회복이 담겨져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참된 복음의 본질이니까요. 요즘 신학은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긍정적인 면들도 있지만 아픈 점들을 정리하자면, 말씀을 통한 상처 치유의 부족, 건강한 리더십의 부재, 강력한 말씀 사역의 부재를 들 수가 있겠습니다.

3. 지난 30년, 선배 이민 목회자들이 놓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쉬운 점, 개혁해야 할 점 등)

먼저 이 거창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 대해 주의하고자 합니다. 선배 이민 목회자들의 눈물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교회나 이민 교회는 이 만큼 성장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한 목회 환경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많은 것들을 주님 앞에 순종하며 헌신한 그분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영성의 터전위에 새벽기도를 하며,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먼저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목회자가 교인들의 삶의 필요를 채워주느라, 정작 본업인 말씀 사역에 지쳐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개척 이민 교회를 하면서 때로는 일주일 내내 법원으로, 변호사 사무실로, 학교로, Social Worker처럼 이리 저리 뛰어다닐 때가 있지만, 그들에게 말씀을 통한 본질적인 생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목회자는 점점 더 비본질적인 일 (물론 그 일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 있어서)에 매어 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경쟁의식 때문에 많은 이민 교회가 필요 이상의 출혈을 감수 한 것 같습니다. 좀 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하나가 되고자 하는 글로벌 마인드가 우리세대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교회를 답습하기 보다는 나만의 독창적인 목회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대형교회 선호적인 목회에서 벗어나, 작지만 건강하고 영혼을 구원하며 성숙시키는 그런 현실적인 목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함께 모였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그러한 새로운 한마음의 움직임들이 이런 저런 모임을 통해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4. 목회의 현장에서 기성 이민세대, 청소년, 어린이 등 그 대상에 따라 목회를 하는 데 있어서 특별히 다른 점을 느끼신다면?

저는 미국에 와서 7-8년을 청소년 영어권을 하다가, 지금은 개척을 해서 1.5세 중심과 1세대를 목회하고 있기에 어떻게 보면 모든 세대를 다 경험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다른 점이라기보다, 특징을 말하자면 1세대는 열정과 헌신이 있고, 2세대는 머리가 있고, 1.5세대는 두 가지를 모두 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느 세대가 무엇이 부족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장점을 더 부각시킨 것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이민 목회를 이해하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5. 앞으로 한어 예배, 영어 예배, 이중언어 예배에 대한 전망은? (위치, 관계 등)

앞으로 이민은 계속 될 것이지만, 이곳에서의 사역은 1.5세와 2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1세가 갖고 이는 열정과 헌신을 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목회자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6. 현재, 교회내 기성 이민세대들과 1.5세, 2세들과의 단절이 심한데 이를 어떻게 바라보시며, 또 어떤 방향(해결책)으로 가야하는지 이야기 해 주십시오.

저희는 아예 다 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기에 이 단절감이 덜 합니다. 서로 한국말 배우려하고, 영어를 배우려 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처음 개척 초기 바탕부터 아예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크지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목회자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목회자이든지, 아니면 영어가 부족하더라도 영어권 사역자를 이해해 주는 품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 둘 중에 아무것도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왜 미국에 보내셨나 사명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리더가 어떤 토양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화해의 사역이든지, 단절의 결과이든지 나오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의 피터 차 교수의 현재 연구 발표에 의하면 90년대 한인 교회를 떠났던 2세들이, 일명 ‘Silent Exodus’(조용한 탈출), 가족과 문화적인 이유로 다시 한인교회로 복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차 교수는 “2세들이 1세 교회로 돌아오는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지만 그 사람들을 받아 줄 수 있는 교회가 몇이나 되느냐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그것이 우리가 실제로 당면한 현실입니다. 그는 또 “몇몇의 대형교회에 2세들이 집중되는 것보다 여러 중소형 교회들이 이러한 기회를 잘 이용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 더 건강할 것 같다”고 조언했는데, 그러려면 교회의 리더십은 세대간의 화해를 위한 예배와 프로그램을 신중하게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7.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교회를 떠나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와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면?

이것은 비단 한인 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살았던 내쉬빌 LIFE WAY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 청소년들이 18세에서 22세 사이에 75%가 교회를 떠난다고 보고합니다. 그 이유들을 보면 목회자의 스타일, 성도들의 이중적인 모습, 비 소속감이 가장 많았습니다. (Most common was, “church members seemed judgmental or hypocritical”(26 percent). Another 20 percent “didn’t feel connected to the people in my church.”) 전체 58%의 이유들 중에 이러한 것들을 정리해 보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문화적인 괴리감(cultural irrelevance)을 느끼는 것입니다.

저의 12년의 미국 목회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문화적인 괴리감은 젊은층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입니다. 삶이 너무 공허해서 말씀을 듣기 위해서 왔는데, 교회는 프로그램만 제시하고, 사회에서 해보지 못한 신비한 경험을 하기 위해 왔는데, 교회는 반대로 사회를 답습하고, 교회가 세상을 개혁하기를 원했는데 교회는 세상 보다 한참 뒤져있는 문화와 설교를 들을 때 청년들은 낙심합니다. 해결책이요?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말씀에 시간을 투자하고, 청년들의 삶과 세상을 연구하고, 세상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해결책이 있을까 생각 합니다. 목회자의 관심이 떠나가면 청년들은 떠나갑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사랑이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8. 앞으로 30년, 미주 한인교회들이, 한인교계들이, 혹은 한인목회자들이 특별히 지향해야 할 방향이 있다면? (교육, 선교, 예배, 문화 등으로 나누어 설명해 주셔도 됩니다.)

질문이 너무 거창해서 논문을 써야 할 것 같은데요^^. 이미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에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정리하자면,

  • 교육은 목회자에게 2세를 키우는데 대한 열정과, 1.5세와 2세를 이해하는 품는 사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 국 교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여러 면에서 짧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불구하고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주 한인 교회들도 조금만 규모만 있으면 선교에 문을 열고 적극 동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서로가 네트워킹 하는 사역 그리고 서로가 WIN-WIN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예배는 문화와 밀접한 관련 있다고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이 우리의 삶의 예배를 통한 문화 개혁이라고 믿습니다. 온전한 예배를 통하여서만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문화가 창조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죽는다면 교회의 문화도 세상을 따라 갑니다. 이 세상을 연구하면서도 이 세상을 본받지 않는 삶은 결국 참된 예배의 능력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9. 앞으로 30년, 미국 땅에 새로운 부흥이 일기 위해서 개인이, 교회가, 교계가, 목회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저는 개인과 교회와 목회자를 따로 보는 것 보다 우리가 모두 주의 종된 자로서 함께 순종하고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이 미국땅에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원해도 부흥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먼저 회개의 운동, 말씀을 통한 치유의 사역, 삶의 변화와 능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회개는 본질적으로 내가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의 죄를 드러낼 때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이민 교회를 돌아보며 선배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러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며 겸허하게 회개하는 운동이 우리 이민교회에 있어야 회복이 가능합니다.

이민 교회는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는 신음하는 공동체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치유와 상담의 역할이 중요시 대두되고 있지만, 우리가 말씀을 통한 본질적인 치유사역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문상담가의 경험과 더불어 말씀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목회자는 힘써야 할 것입니. 사실 이 상처의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보면 초대교회에도 넘쳐났습니다. 상담의 기초 지식도 갖고 잊지 않은 그들이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그 회복을 가능하게 한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말씀 사역과 상담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민 교회는 많은 면에서 삶의 능력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힘듭니다. 전도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드물 정도 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참된 전도가 아니라 우리 교회 나오라는 전도입니다. 지금의 세대는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삶의 능력이 함께 동반되어 있는가를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죄로 얼룩지어진 주님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은, 우리가 세상에 있으나 세상과 구별된 거룩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부 족한 젊은 목사에게 기회를 주신 크리스챤 헤롤드분들께 감사드리며, 30주년 기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민 교회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함께 성숙하는 하나님의 신문이 되기를 소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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